뉴스교통안전

경찰의 ‘거부권 불고지’가 만취운전의 ‘위험’보다 무거운가

— 혈중알코올농도 0.129% 무죄 확정 판결이 던지는 질문 —

사건의 경과

2022년 2월 23일 밤, 대전 유성구의 한 도로에서 A씨는 혈중알코올농도 0.129%의 만취 상태로 약 250m가량 차량을 운전했다. 이는 도로교통법상 면허취소 수치(0.08% 이상)를 훌쩍 넘는 수준이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30~40분에 걸쳐 10여 차례 호흡측정을 시도했으나 공기량 부족으로 결과값을 얻지 못했고, 결국 A씨의 동의를 받아 채혈로 전환해 수치를 확보했다. A씨는 벌금 5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자 정식재판을 청구했다.

쟁점은 ‘동의의 질(質)’이었다. A씨 측은 당시 경찰이 ‘호흡측정이든 채혈이든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응해야 한다’고만 설명했을 뿐, 채혈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별도로 고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의 재판 과정은 단선적이지 않았다. 1심은 이 주장을 받아들여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은 ‘A씨의 동의로 채혈이 이뤄졌고 강압적 정황이 없다’며 뒤집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 2심 판결은 대법원에서 한 차례 파기됐는데, 당시 파기 사유는 증거능력 문제가 아니라 ‘형종 상향 금지 원칙'(피고인만 정식재판을 청구한 사건에서는 약식명령의 형보다 무거운 종류의 형을 선고할 수 없다는 절차 규정, 벌금 약식명령에 대해 징역형을 선고한 것이 이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 위반이었다. 사건을 다시 넘겨받은 파기환송심(2025년 12월)은 이번엔 실체 쟁점을 정면으로 다뤄, 경찰의 설명이 채혈에 응할 법적 의무가 있는 것처럼 오인하게 만드는 부정확한 고지였다고 보아 채취된 혈액과 감정서를 위법수집증거로 배제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이 다시 상고했으나, 대법원은 재상고심에서 이 판단을 그대로 확정했다.

1. 법리의 뼈대 — 왜 ‘동의’가 이토록 엄격하게 다뤄지는가

도로교통법 제44조는 호흡측정과 채혈을 근본적으로 다르게 취급한다. 호흡측정은 운전자에게 응할 ‘의무’를 부과하지만, 채혈은 신체에 대한 직접적 침해를 수반하는 방법이기에 운전자의 ‘동의’를 전제로 한다. 영장 없는 채혈이 허용되려면 그 동의가 진정하고 자발적이어야 하며, 수사기관은 동의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즉 거부할 수 있다는 사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오랜 흐름이다.

이 원칙은 이번 사건에서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대법원은 이미 여러 판결에서 영장 없는 채혈이나 부실한 동의 절차로 얻은 혈액 감정 결과를 위법수집증거로 배제해 왔다. 핵심은 ‘형식적으로 동의서에 서명했는가’가 아니라 ‘동의의 의미와 결과를 제대로 알고 자유롭게 선택했는가’이다. 경찰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한 순간, A씨에게는 선택지가 아니라 의무처럼 느껴졌을 가능성이 크다. 법원은 바로 이 지점—동의의 실질성이 훼손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2. 비교의 저울 — 운전자의 과실과 경찰의 하자는 ‘같은 층위’가 아니다

질문 자체를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경찰의 고지의무 위반이 음주운전이라는 면허취소 사유보다 과실이 무거운가’라는 질문은, 두 가지를 마치 저울 위 무게추처럼 직접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이 둘은 성격이 다른 층위의 문제다. 아래 표로 정리한다.

구분 운전자 A씨의 과실 경찰의 절차적 하자
행위의 성격 혈중알코올농도 0.129%, 면허취소 수준의 만취 운전(약 250m) 채혈 시 거부권 미고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부정확한 설명
침해되는 법익 도로 교통안전, 타인의 생명·신체(추상적 위험범) 신체의 자유·자기결정권(헌법 제12조), 적법절차 원칙(헌법 제12조 제1항)
법적 평가 도로교통법상 처벌 대상 범죄행위 그 자체 수사·행정 절차의 적법성 요건 위반 → 증거능력 배제 사유
쟁점의 층위 ‘음주운전을 했는가’라는 실체적 사실의 문제 ‘그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라는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

 

A씨가 만취 상태로 도로에 나선 것은 그 자체로 명백한 범죄행위이자 사회적 위험이다. 이 사실은 파기환송심과 대법원 어디에서도 부정되지 않았다. 법원이 선언한 것은 ‘A씨가 술을 마시지 않았다’가 아니라 ‘그 사실을 이 증거로는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실체적 진실과 소송법적 증명력은 별개의 문제이며, 이번 판결은 전자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후자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3. 절차를 무겁게 다루는 이유 — ‘한 번 무너지면 전부 무너진다’

그럼에도 법원이 경찰의 사소해 보이는 설명 방식 하나를 이유로 유죄를 뒤집은 것은, 위법수집증거배제법칙(형사소송법 제308조의2)이 지닌 예방적·제도적 성격 때문이다. 이 법칙은 개별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수사기관 전체의 관행을 겨냥한다. 만약 ‘경찰이 대충 설명해도 결과만 맞으면 증거로 쓴다’는 선례가 쌓이면, 신체 침해를 수반하는 채혈 절차에서 동의라는 안전장치는 형해화된다. 오늘은 음주운전이지만 내일은 다른 강제수사에서 같은 논리가 반복될 수 있다.

“위법수집증거 배제는 그 사건의 피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사건의 시민을 위한 것이다” — 라는 형사소송법의 오래된 격언이 이 판결의 배경을 가장 잘 설명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파기환송심과 대법원의 판단은 ‘경찰의 실수가 음주운전보다 더 나쁘다’는 도덕적 서열을 매긴 것이 아니라,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은 증거는 그 위험성과 무관하게 재판에서 쓸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에 가깝다. 법치국가에서 수사기관은 목적이 정당하다는 이유로 절차를 생략할 수 없다는, 헌법 제12조 적법절차 원칙의 당연한 귀결이다.

4. 그럼에도 남는 불편함 — 상식과 여론의 시선

다만 이 판결이 시민의 상식과 정확히 포개지는 것은 아니다. 세 가지 지점에서 여전히 불편함이 남는다.

 *결과의 비대칭성: 0.129%라는 명백한 수치가 확보돼 있음에도, 설명 문구 하나의 미비로 ‘무죄’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은 일반 시민의 정의 감각과 충돌한다. 절차의 하자와 무죄 방면 사이의 간극이 지나치게 크다는 비판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경찰의 고의성 부재: 이 사건 경찰관은 A씨를 속이거나 강압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현장 매뉴얼의 부정확함 또는 실무 관행에 따라 설명했을 가능성이 크다. 악의적 위법수집(예: 영장 없는 강제채혈)과 ‘설명이 다소 불충분했던 동의’는 위법성의 정도에서 차이가 있는데도, 결과적으로 동일하게 증거능력을 완전히 박탈하는 것이 비례에 맞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절차 지연의 문제: 약식명령(2022년경 발령 추정) 이후 1심 무죄, 2심 유죄(징역형), 대법원의 1차 파기(형종상향금지원칙 위반), 파기환송심 무죄(2025년 12월), 재상고심 확정에 이르기까지 사건이 여러 차례 법원을 오갔다. 이 중 대법원의 첫 개입은 정작 이 사건의 핵심 쟁점(위법수집증거)과 무관한 절차 규정 때문이었다는 점에서, 실체 판단이 그만큼 늦어진 셈이다. 유사 사건에서 검찰이 향후 어떻게 증거를 보강할 것인지에 대한 실무적 공백도 남는다.

이러한 지적들은 ‘법원이 틀렸다’는 결론으로 이어지기보다는, ‘경찰 현장 매뉴얼의 정비’와 ‘고지 문구의 표준화’가 시급하다는 정책적 과제로 연결되는 것이 타당하다. 즉 비판의 방향은 법원의 법리 적용이 아니라,애초에 이런 다툼의 여지를 남긴 경찰 실무 쪽을 향해야 한다.

5. 판단 — 판결은 정당한가

법과 절차의 관점에서 보면 이번 판결은 정당하다. 채혈이라는 신체침해적 조사방법에 대해 도로교통법이 명시적으로 ‘동의’를 요구하고 있는 이상, 그 동의가 실질적이었는지를 엄격히 심사하는 것은 법원의 당연한 책무다. ‘둘 중 하나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설명은 객관적으로 보아 거부권의 존재를 은폐하거나 왜곡할 소지가 다분했고, 법원은 이를 정확히 짚었다.

공정성의 관점에서 보면, 이 판결은 ‘경찰의 잘못이 음주운전자의 잘못보다 크다’고 선언한 것이 아니라 ‘국가가 시민의 신체에 개입할 때는 그 절차적 정당성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는 책임의 소재를 분명히 한 것이다. 형사절차에서 입증책임은 국가에 있으며,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결과는 국가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상식의 관점에서는 만취운전이라는 명백한 위험행위가 절차적 하자 하나로 형사처벌을 면하는 결과에 대해 시민들이 느끼는 이질감을 법조계와 경찰이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그 해법은 판결을 비난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장 경찰의 고지 문구를 법제화·표준화하고, 채혈 동의 절차를 서면·영상으로 명확히 기록하는 제도 개선에 있다. 절차를 지키는 비용은 국가가 미리 감수해야 할 몫이지, 사후에 판결로 메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 본 논평은 공개된 판결 요지 및 보도 내용을 토대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수사기관이나 개인에 대한 비난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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